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"고작 하루 전의 일인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." 로 시작하는 짧은 글

고작 하루 전의 일인데 도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.

머리가 깨질 것 같다.

쑤시는 몸을 억지로 일으켜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고민해 보아도

무슨 일이 있었는지 도통 기억해 낼 수가 없다.

일요일 아침, 시계가 7시임을 알려준다.

어제 대체 몇 시에 잤길래 이렇게 일찍 일어났을까?

금방이라도 비가 올 것 같다.

아침답지 않게 어두운 게 왜인지 갑갑하다.

평소에는 이렇게 일찍 일어나더라도 다시 누웠지만

묘한 긴장감에 침대에서 벗어난다.

내가 어제 누군가 만나기라도 한 걸까?

평소와 같이 지저분한 책상 위에는 영수증이 올려져 있었다.

소주 4병, 맥주 8병, 총 12,800원

술에 진탕 취해서 쓰러져 잤을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지만

냉장고에 그대로 쌓여있는 술을 확인하고 나니

저 술은 내가 산 게 아니라는 것까지 기억났다.

내 주변에 술을 가져가라면서 사 줄 인물은 없었다.

어제 내가 만났던 사람은 누구였을까?

얼굴도, 성격도, 말투도, 심지어 이름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.

"야. 우리 이제 만날 일 없겠지?"

순간적으로 누군가의 한 마디가 기억난다.

처음 듣는 것 같은 말투, 목소리였지만

왜인지 상대가 어제 만난 사람임을 짐작했다.

더 이상 만날 일도 없다면, 궂이 기억해 낼 필요도 없으리라.

가벼운 마음으로 영수증을 구겨 쓰레기통에 버린다.

멀쩡한 술까지 버릴 필요는 없다고 생각하며

냉장고 속의 술을 놔두고 자리로 돌아온다.

빗방울이 방충망을 때리기 시작했다.

창문을 열자 차가운 바람이 불어온다.

비 오는 날의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

방금 탄 따듯한 커피를 마신다.

비가 거세지면서 방충망 너머로 빗물이 조금씩 튄다.

툭, 투둑, 툭.

바닥으로 물방울이 하나 둘 떨어진다.

어라...? 나, 어째서 눈물이....?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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